#삼국지 23. 읍참마속(공명 눈물을 닦으며 법대로 마속을 처형한다. 공명은 실패 책임을 스스로 세등급 낮추고 과오를 되짚어본다.)
이때 마속·왕평 · 위연·고상 등이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공명은 먼저 왕평을 장막 안으로 불러들여 꾸짖는다.
내가 네게 마속과 더불어 가정을 지키라 했거늘 어찌하여 간하지 않고 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했단 말이냐!"
왕평이 고개를 숙이고 답한다.
"중요한 길목에 토성을 쌓고 영채를 세워 지키자고 여러번 권했으나 참군이 도무지 화만 내며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끝내 저혼자서 5천 군사를 거느리고 산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웠더니, 위군이 쳐들어와 사방에서 산을 포위했습니다.
군사를 몰아 10여차례나 쳐들어갔으나 포위를 뚫을 길이 없었고, 이튿날엔 산위 군사들이 토붕와해(土, 땅이 무너지고 기와가 깨지듯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짐)되어 투항하는 자가 부지기수였습니다. 홀로 버티기 어려워 위문장(文長, 문장은 위연의 자)에게 구원을 청했는데, 산골짜기에서 또다시 위군에게 포위당하고 말았습니다.
사력을 다해 포위를 뚫고 겨우 본채로 돌아가보니 이미 위군에게 점령당한 뒤였습니다.
다시 열류성을 향해 달리다가 도중에 고상을 만나 위문장. 고상과 함께 군사를 셋으로 나누어 위군의 영채를 급습하고 가정을 탈환하기 위해 갔습니다.
하오나 가정에 가보니, 한 사람의 복병도 보이지 않아 의심스러운 생각이 들어 높은 곳에 올라가 살펴보니 위문장과 고상이 위군에게 포위당해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기에 곧장 포위를 뚫고 두 장수를 구출한 후 참군의 군사와 다시 합류했습니다.
그러고는 양평관을 잃게 될까 두려워 급히 달려가 지켰습니다. 가정을 잃은 것은 제가 간하지 않아서가 아니니, 승상께서 믿지 못하시겠거든 각부의 장교를 불러 물어보십시오."
공명은 왕평을 꾸짖어 물리치고, 마속을 장막으로 불러들였다.
마속은 이미 스스로 굵은 밧줄로 온몸을 결박하고 들어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공명은 얼굴빛이 변하여 꾸짖는다.
"너는 어려서부터 병서를 많이 읽어 전법에 밝은 사람이 아니더냐?
내가 여러차례 네게 이르기를 가정은 우리의 가장 근본이 되는 곳이라고 주의를 주었더니, 너는 집안 가족의 목숨을 걸고 중임을 맡지 않았느냐.
네가 만일 왕평의 말을 들었다면 이런 화는 입지 않았을 터.
이번에 군사들이 패하고 장수가 꺾이고 땅을 빼앗기고 성이 함락된 것은 모두 너의 잘못이다.
내 지금 군율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어찌 여러 군사들을 복종시킬 수 있겠는가?
네가법을 어겼으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
네가 죽은 뒤에는 내가 너의 가속을 거두어 다달이 녹미를 줄 것이니.
너는 조금도 근심하지 말라."
공명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좌우에게 큰소리로 호령한다.
"당장 끌어내 목을 베어라!"
마속이 울면서 말한다.
"승상께서는 저를 자식처럼 대하셨고 저 또한 숭상을 아비처럼 섬겼습니다.
저의 죄 실로 죽음을 면키 어렵습니다만, 바라옵건대승상께서는 순임금이 곤을 죽이고 우(禹, 곤의 아들)를 쓴 의를 헤아리시어 제 자식들을 대해주신다면 저는 비록 죽어 구천에 가더라도 여한이 없겠습니다."
공명 또한 눈물을 닦으며 말한다.
'내 지금껏 너와 더불어 형제 같은 의리로 지냈으니, 네 아들은 곧 내 아들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남은 가족들에 대해서는 더이상 말하지 말라."
좌우에서 마속을 끌고 원문 밖으로 나가 막 목을 베려 할 때였다.
성도로부터 참군 장완이 당도해 그 광경을 보고 크게 놀라 외친다.
"잠시 멈추어라!"
장완은 황망히 달려가 공명에게 간한다.
"옛날 초나라에서 충신 득신(臣, 초의 장수로 진들과의 전투에서 패해 돌아와 핍박받아 죽음)을 죽였을 때 진문공(公)이 기뻐했던 것처럼 아직 천하가 평정되기도 전에 지모가 뛰어난 신하를 죽인다면 이 어찌 아까운 일이 아닙니까?"
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옛날에 손자가 능히 천하를 손에 넣은 것은 법을 밝게 썼기 때문이오.
바야흐로 사방이 나뉘어 서로 다투며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만일 법을 폐한다면 어찌 역도들을 토벌할 수 있겠소.
마속은 처형해야 마땅하오!"
얼마 후 군사들이 마속의 머리를 섬돌 아래 바치니 공명은 목놓아 울며 그칠 줄을 몰랐다. 장완이 묻는다.
"이제 유상 마속의 자)이 죄를 지어 이미 군법으로 바로잡았거늘 어찌하여 그리 우십니까?"
신은 용렬한 재주로 외람되이 병권을 잡고 삼군을 통솔해왔으나
군사들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군법을 바로 세우지 못했으며,
일에 임해서는 세심하지 못하여 마침내 가정에서 명령을 어기는 잘못을 범하게 하고 기곡에서는 경계를 소홀히 하는 실수를 하게 하였나이다.
이는 모두 신이 몽매하여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일을 분별함에 너무도 어두운 탓이니,
춘추(秋)의 법에 비추어볼 때 신이 지은 죄를 어찌 벗어날 수 있사오리까.
바라옵건대 신이 스스로 벼슬을 세 등급 내려서 허물을 책하고자 하오니, 이로써 신의 허물을 꾸짖어주소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여 엎드려 명을 기다리나이다.
후주가 공명의 표문을 읽고 나서 말한다.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인데 승상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하시는가?"
시중 비의가 아뢴다.
'신이 듣건대, 나라를 다스리는 자는 반드시 법을 중히 받들어야 한다 하였습니다.
법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사람을 복종시키겠습니까? 승상이 싸움에 패하여 스스로 벼슬을 깎는 것은 마땅한 일인 줄로 아뢰옵니다."
후주는 그 말에 따라 공명의 벼슬을 내려 우장군을 삼되 숭상의 일을 그대로 맡아보며 전과 같이 군마를 총독하라는 내용의 조선를 써서 한중으로 보냈다.
비의는 조서를 가지고 가서 공명에게 전하며 혹시 공명이 벼슬 강등된 것을 부끄러워할까 염려하여 몇마디 치하의 말을 보탠다.
촉의 백성들이 승상께서 처음에 네 고을 빼앗은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습니다."
공명이 안색이 변하며 말한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얻었다가 다시 잃은 것은 얻지 못함과 진배없거늘.
공이 이것으로 나를 치하하니 참으로 부끄러워 얼굴 들지 못하겠소"
비의가 다시 말한다.
"황제께서는 숭상이 강유를 얻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이 말에 공명은 오히려 화를 낸다.
'군사가 패하여 돌아오고 한치의 땅도 빼앗지 못한 것은 나의 대죄이오. 우리가 강유 한 장수를 얻었다고 한들 그것이 위나라에 무슨 손실이 되겠소?"
비의가 묻는다.
“승상께서는 지금 용맹한 군사 10만을 통솔하고 계시니, 다시 위를 치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공명이 말한다.
"지난날 대군이 기산과 기곡에 주둔했을 때 우리 군사가 적보다 많았건만 능히 적을 물리치지 못하고 오히려 패하였소.
승패란 군사의 많고 적음에 있지 않고 오로지 대장에게 달린 것이오.
이제 나는 군사와 장수를 줄이고, 징벌을 밝히고 과오를 되짚어 생각하여 앞으로는 어떤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려 하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군사가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제부터는 누구든 진실로 나라의 장래를 염려한다면 나의 잘못을 지적하고
나의 부족함을 꾸짖어주길 바라오.
그렇게 해야만 일이 바로잡히고 적을 멸할 수 있으며, 공을 이루게 될 날을 족히 기다릴 수 있을 것이오.
비의를 비롯한 모든 장수들은 깊이 감복했다.
비의가 다시 성도로 돌아간 이래 공명은 한중에 머물면서 백성을 사랑하고 군사를 아끼며 무예를 가르치고 군사 조련에 힘썼다.
또한 성을 공략하는데 필요한 무기며 강을 건널 기구를 만들고, 군량미와 마초를 비축하면서 앞으로 수행할 정벌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