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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by 조지오엘> 전체주의에 맞선 개인의 고뇌와 대한민국 민주주의!!

센스쟁이야 2024. 12. 5.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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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1984』는 전체주의의 극단적 모습을 그린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완전히 통제된 가상 국가 오세아니아로, 이곳은 “빅 브라더”라는 절대 권력에 의해 지배된다.
모든 시민은 텔레그램이라는 현재의 cctv같은 장치로 끊임없는 감시를 받으며,
역사와 언어마저 왜곡당해 진실을 알 권리를 잃어버린다.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진실을 왜곡하는 체제에 회의를 느끼는 평범한 당원이다.
그는 진리부라는 기관에서 역사 기록을 조작하는 일을 하면서 체제의 부조리를 깊이 인식하게 된다.
빅 브라더는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라는 슬로건으로 국민을 세뇌하고,
언어를 단순화한 신어(Newspeak)를 통해 비판적 사고를 억압한다.

윈스턴은 체제에 반발하는 마음을 품고,
체제에 저항하는 상징적 존재로 믿었던 오브라이언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는 함정이었고, 그는 체제에 대한 반역 혐의로 체포된다.
이후 끔찍한 고문과 세뇌를 통해 결국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고,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에 이른다.

윈스턴의 이야기는 개인의 자유와 진실을 억압하는 전체주의의 잔혹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동시에 억압적인 권력에 맞선 개인의 고뇌와 좌절을 통해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더욱 강조한다.



윈스턴이 겪는 전체주의적 억압은 대한민국의 계엄선포와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군부의 폭력적인 진압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시기로,
『1984』의 디스토피아와 비슷한 맥락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는 『1984』와는 다른 희망의 결말을 만들어 냈다.
억압적인 권력에 맞선 국민들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냈으며,
이후 민주화를 지속적으로 이루어냈다.
이는 윈스턴이 실패한 자유와 정의의 회복을 대한민국이 집단적 연대와 노력으로 이뤄냈음을 보여준다

『1984』는 독자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상기시키며,
이를 지키기 위한 끊임없는 경계를 강조한다.

대한민국의 계엄선포와 민주화 투쟁은 이러한 교훈을 실천한 생생한 사례이다.

윈스턴의 좌절은 전체주의가 강요하는 절대 권력 앞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만,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은 개인과 집단의 연대를 통해 전체주의적 억압을 극복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따라서 『1984』를 읽으며 대한민국의 계엄선포와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책임과 희망을 되새기는 일이 되어야한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자유와 정의를 위한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정저구현(正著具現),
즉 정의를 세우고 실현하는 길임을 배울 수 있다.



이렇게 지켜온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군사정권의 슬픈 역사를 상기시켰다.

1979년도 박정희 김재규의 암살 이후 1980년 12.12사태 전두환 쿠테타 계엄령,
1980년 광주 5.18 계엄령으로 사망자 및 행방불명 600명, 그 외 부상자 3천명
시민이 희생당했다.

마르크스는 역사를 이끌고 가는 힘은 경제가 하부구조이고
나머지 역사, 정치, 사회, 문화, 의식 등 경제를 제외한 나머지를 상부 구조로 규정하여
하부 구조가 상부 구조를 결정한다는 ‘하부 구조 경정론’을 제시했다.
쉽게 말해 경제의 모습이 바뀌면 역사도, 사회도, 문화도 모든것이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는 중요하다.
역사를 끌고 가는 힘의 중심은 경제이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체제로 빠른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 명목 gdp는 2조 달러로 세계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자, 자동차, 반도체, IT등 첨단 기술 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선진국이다.

그러나 경제는 우뚝섰지만 정치는 오히려 퇴행했다.

대한민국 정치는 이승만정권을 시작으로 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로 탈바꿈 시켰다.
누가 탈바꿈 시켰나?
민주주의는 민중이 주인인 정치체제이다.
시민들이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지만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제로 운영되어 국회의원들이 결정을 한다.
한국은 특히 정당정치로 개인의 정치적 견해보다는 정당의 방향성이 더 강하게 작동한다.
엘리트주의와 닮은체제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이 소수 엘리트주의 ‘중우정치‘를 경계했다.
중우정치는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에 의해 사회의 방향이 결정되는 정치적 실패이다.
특히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민주주의가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해 얼마나 파행적인지 보여줬다.

40년만에 사회를 지탱해온 민주주의를 뒤흔들었다.

국민의 대표가 있는 국회 앞에서 계엄군이 총을 들고 국민들을 향해 겨눴다.
국민이 세우고 국민에 의해 권력이 나오는 국가가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누다니
아.... 슬픈 현실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

지혜와 덕을 갖춘 사람을 통치자로 뽑아야 한다.


국가의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1863년 아브라함 링컨은
남북전쟁 종료 후 게티즈버그 연설에서
국가의 존재 의무는 국민에,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에 있다라고 했다.

국민에 of the people’라는 개념은 국가 권력이 ‘국민에’ 의해 구성된다는 의미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항이 이것이다.
사회계약설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 구절은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시키주고 있다.

실제적으로도 국민은 국가 성립의 조건이기도 하다.
국가 성립의 3요소인 주권, 영토, 국민에서 ‘국민’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이 없으면 ‘국가’라는 실체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민에 의해 by the people’,
국민의 뜻에 달려 있어야 한다.
현재 국민의 뜻을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은 ‘선거’이다.
한 표가 갖는 의미가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 표가 모여 국가 운영의 향뱡을 결정한다

국민을 위해 for the people’야 한다.
바로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기본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주권을 행사하고 기본권을 실현하는 정치 그것이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