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수레바퀴 아래서 by 헤르만헤세> 우리 젊은이들의 자화상

센스쟁이야 2025. 1. 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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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기벤라트는 의심할 여지없이 재능 있는 아이였다.
슈바르츠발트의 이 자그마한 마을에서는 여태껏 그러한 인물이 배출된 적이 없었다.
이 좁은 세계 너머로 눈을 돌리거나 영향을 끼칠 만한 사람이 여기서는 아직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 한스는 엘리트 코스대로 신학교에 입학을 했다.
성적은 2위로 동네 모든 사람이 들떴다.
교장선생님, 목사, 선생님,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축하를 받으면서 입학을 하게 된다.

이때 한 명  구두장이 플라이크 아저씨만 염려를 한다.

“정말 어리석은 일이구나
한스! 그건 죄악이란다.
너만 한 나이에는 바깥공기도 실컷 마시고, 운동도 충분히 하고 편히 쉬어야 하는 법이란다.
도대체 뭣 때문에 방학이 있는 줄 아니?
방구석에 틀어박혀 그저 공부나 하라는 건 줄 아니?
넌 정말 뼈와 가죽만 앙상하구나”


끝내 한스가 신학교에서 낙오되고 중퇴하게 되었다.
기계공이 되어 주점에 가게 되었다.
모든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채 저 멀리 아련히 보이고
한스는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주점에서 나와 온갖 불쾌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불안감, 혼돈에 싸인 상념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자신이 더럽히지고 모욕을 당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렴풋한 상념과 추억들, 수치심과 자책감이 음울하게 물결치며 한스를 뒤덮었다.


사늘한 시체가 되어 검푸른 강물을 따라 골짜기 아래로 조용히 떠내려가고 있었다.
구역질이나 부끄러움이나 괴로움도 모두 그에게서 떠나버렸다.
어둠 속에서 흘러 내려가는 한스의 메마른 몸뚱이 위로 푸른빛을 띤 차가운 가을밤의 달빛이 비치고 있었다.
시꺼먼 강물은 그의 손과 머리, 그리고 창백한 입술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플라이크 아저씨는 말을 한다.

“참으로 가혹한 일입니다.
저도 그 아이를 무척 좋아했답니다.
저 아이는 무척 재능이 뛰어난 아이였어요
그리고 일도 모두 잘 풀려나갔지요
학교며 시험이며
그러나 갑자기 한꺼번에 불행이 닥쳐온 겁니다.
저기 걸어가는 신사 양반들 말입니다.
학교 선생들
저 사람들도 한스를 이 지경에 빠지도록 도와준 셈이지요”


<나의 느낀 점>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지금 아들도 고3으로 입시 체제의 노예처럼 공부하고 있다.
명절과 쉬는 날도 다 포기하고 해 뜨고 질 때까지 책과 씨름한다.

나도 그런 시절을 보내왔다.
20년이 지나 경제는 성장하고 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하여 살만한데도
대학입학을 위한 입시체제는 그대로이다.

권위적인 기성 사회의 무게에 눌려 태어날 때부터 자유는 없다.
재능을 찾아서 하고 싶은 거 해주고 싶다는 건 먹고사는 집 이야기다.
예체능의 소질은 만 시간의 법칙으로 만 시간만 채우면 실력은 절로 는다.
그 만 시간을 몇 살에 달성했느냐에 따라 천재 및 영재라고 불린다.
만 시간을 채워주기 위해서는 부모의 뒷바라지가 필수이다.

우리는 아들에게 예체능은 못 시켜줬다.
나도 못 받아봤다.
생활이 녹록지 않아서 오직 공부로 승부를 걸어야 했다.
나는 가장 쉬운 공무원시험에 도전했고
아들은 아직 희망을 걸고 인 서울 대학에 도전한다.

인간으로서 정체성은 대학 가서 찾아야 하나?
고등학교 때까지 입시라는 수레바퀴를 끌고 가야 한다.
포기를 하든 이겨 내든 깔리지만 않음 된다.

주인공 한스는 그만 수레바퀴를 끌고 가다가 깔려 나오지 못하고 죽게 된다.
최근에 본 <멋진 하루>라는 영화를 봤다.
한스에게 말하고 싶다.
주인공 하정우처럼 유쾌하고 가볍게 단순하게 살아가라고
실패해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