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보는 세상

<종의 기원 by 정유정> 행복한 이야기는 대부분 진실이 아니다.

센스쟁이야 2025. 5. 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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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이야기는 대부분 진실이 아니에요

비로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것, 스스로 부른 재앙, 발작전구증세였다.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올 것은 결국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나는 선택해야 했다.
끝까지 버티다 저 거대한 공동의 암흑 속으로 추락해버리든가,
당장 몸을 세우고 수영장 밖으로 튀어나가든가.

나는 후자를 택했다.
때마침 손끝에 닿은 터치패드를 붙들고 급브레이크를 걸 듯 몸을 세운 후, 곧장 풀에서 튀어올랐다.
모자와 수경을 벗어 던져버리고 경기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코치가 고함을 질렀으나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힘도, 시간도 없었다.
어둑어둑한 시야에선 눈을 뒤집고, 거품을 물고, 온몸을 비틀며 오그라드는 내 모습이 어른대고 있었다.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디로든 가야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발이 이끄는 대로 내달렸을 뿐. 이윽고 그 순간이 왔다.
몸 안에서 포탄이 터지는 듯한 충격이 일어났다.
설원으로 들어선 것처럼 시야가 백색광으로 뒤덮였다.
대정전이라도 일으킨 것처럼 의식회로가 완전히 멈췄다.

지금부터는 내 인생이 초토화된 진짜 이유를 찾아야 했다.
나를 위한 그림을 그려야 했다. 아래층에서 해진이 기다리고, 언제 이모가 쳐들어올지 모르는 마당이므로,
필사적으로 집중해야 할 것이다.
골이 흔들리고, 귀에서 마이크가 빽빽거리고, 병들어 골골대는 닭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몸도 정신도 휴가 상태라야 했다.
설령 그것이 위험한 휴가라 할지라도막막했다.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뭔가를 하는 것 자체가 하염없이 두려웠다.
뭔가를 하려 들면 들수록 내 몸에 족쇄 하나씩을 채우는 꼴이 돼가고 있었다.
무엇을 하든, 결국에는 집을 나가기 전에 봤던 지옥의 통로로 떨어져버리게 될 것 같았다.
그러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낫지 않을까.

갑자기 지치는 기분이었다.
피곤이 공원의 비둘기 떼처럼 몰려들었다.
이대로 침대에 엎어져버리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잠들고 싶었다.
이 혼돈이 파국이라는 말로에 가닿기 전에, 잠시라도 나는 눈을 감고 이마 한중간을 꾹꾹 눌렀다.
신음 같은 한숨이 샜다.
세상에는 외면하거나 거부해봐야 소용없는 일들이 있다.
세상에 태어난 일이 그렇고, 누군가의 자식이 된 일이 그러하며, 이미 일어나버린 일이 그렇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는 추측항법으로 날아가는 제트기는 되고 싶지 않았다.
나에 대한 마지막 주권 정도는 되찾고 싶었다.
이 빌어먹을 상황이 어떤 식으로 끝나든, 내 삶은 내가 결정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남은 힘을 끌어모아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둠 속에 갇힌 2시간30분을 내 앞으로 끌어내야 했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혹은 어머니가 원하는 최선의 인간이 되기로 했다.
내일이나 모레, 아무려나 적당한 때부터.
내 머릿속에서도 두 개의 생각이 상충하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모를 안으로 불러들여야 한다'와 '지금 내가 밖으로 나가야 한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여태 미뤄왔던 내 '미래'가 결정될 터였다.
자수할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전자는 이성이, 후자는 본능이 제시한 선택지였다.
어느 쪽이든 정하고 나면 돌이킬 수 없을 터였다.
타협할 여지도 없고 시간도 많지 않았다.
이모가 남아 있는 '포석 다섯 개를 건너가는 사이'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방 안 공기는 손톱 끝으로 툭, 치기만 해도 와르르, 부서져 내릴 것처럼 위태롭게 팽창돼 있었다.
내 태도를 정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잃는 게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 어렵다는 걸, 난생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흔들리는 동공에는 두려운 표정이 덮여있었다.

해진의 눈이 연속 촬영이라도 하듯 내 눈을 서서히 가로질렀다.
시선의 움직임이 너무 더뎌서, 내 동공이 태양계만큼이나 넓은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는 마침내 내 인생 최고의 적을 만났다.
그런데 그가 바로 나인 것이다."

나는 정말로 내 인생 최대의 적을 만났다.
이제는 마음먹은 대로 쓸 수 있겠다.
생각한 건 내 오만이었다.
세 번을 다시 썼다.
외지에서 공부하는 아들과 함께 지내며 한 번, 남해 바닷가에서 한 번, 집으로 돌아와 한 번 플롯이나 문장, 묘사에 대한 수정이야 수도 없이 하는 일이지만, 이야기 자체를 세 번씩 부순 건 <내 심장을 쏴라> 이후 처음이었다.
이유는 하나, '유진'이 존재로서 만져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교활한 아이는 나를 어두운 미로에 가둬두고 머리칼끝만 거뭇거뭇 보여주는 숨바꼭질을 계속했다.
당황스러웠다.
습작을 막 시작하던 시절처럼 막막하고 혼란스러웠다.
아니 나 자신에게 실망스러웠다.
처음 소설을 시작할 때, 나는 내가 작가로서 충분히 자유롭게 사고한다고 믿었다.
두 번째 다시 쓸 때까지도 그렇다고 우겼다.
세 번째로 다시 쓸 때에야 비로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인 '나'가 어린 시절부터 학습돼온 도덕과 교육, 윤리적 세계관을 깨버리지 못했다는 걸.
주인공인 '나'는 그런 것에 전혀 구애받지 않는 '맹수'인데, 더 나쁜 건, 그 틀이 깨지는 걸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선대의 작가들, 스승으로 삼았던 작가들을 통해, 작가는 자기 이름을 걸고글을 쓰는 한 두려움과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배웠으면서도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인류의 2~3퍼센트 가량이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유진은 그중에서도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선 '프레데터'라 부른다는 '순수악인'이다.
비둘기의 세상에 태어난 매이자 피식자로 살아가도록 학습받고 억압받으며 성장한 포식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종의 기원>은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내가 왜 인간의 '악'에 관심을 갖는지에 대해 대답할 차례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내면의 악, 타인의 악, 나아가 삶을 위협하는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분신 유진이 미미하나마 어떤 역할을 해주리라 믿고 싶다.

태양은 만인의 것, 바다는 즐기는 자의 것

역시나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영화인지 책인지에서 나온 문장이다.
책을 편 독자들에게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여정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는 하나 이야기 자체로서,
혹은 예방주사를 맞는다는 기분으로 부디즐겨주었으면 감사하겠다.

광주에서 정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