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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8, 빼앗은 형주 돌려주지 않기 :유비(사장)는 주라고 하고 관우(중간관리)는 못준다 하고, 협상의 자리 상대편 인질을 잡고 빠져나온다

센스쟁이야 2024. 7. 24.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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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덕이 공명에게 묻는다. "형님 되시는 분이 무엇 때문에 여기 오신 것 같소?"
"형주를 되찾으러 왔을 겁니다."

"그럼 내가 어떻게 대답해야 하오?"

공명은 유현덕에게 이러이러하게 대답하라고 일러주었다.
계책을 정하고 나서 공명은 성밖으로 나가 제갈근을 영접했는데, 형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지 않고 빈관, 귀한 손님을 모시는 집으로 안내했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제갈근은 소리 내어 통곡을 한다.
"형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말씀을 하셔야지 이렇게 우시면 어찌합니까?"

공명의 말에 제갈근이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내 가족들은 모두 이제 끝장이 났구나…………"

"형주를 돌려받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이 아우 때문에 형님 가족들을 잡아가두었다니 제 마음인들 어찌 편하겠습니까.
제게도 생각이 있으니 형님께서는 너무 걱정 마십시오. 형주를 곧 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갈근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공명과 더불어 현덕에게로 가서 인사하고 손권의 서신을 바쳤다.
현덕은 제갈근으로부터 서신을 받아 읽고 나서 벌컥 화를 낸다.

"손권이 제 누이를 내게 시집보내놓고 내가 형주를 비운 틈에 몰래 빼내갔으니 정리로 보아도 어찌 용서할 수 있겠소?
내 지금 서천군사를 이끌고 강남으로 쳐들어가 원한을 갚으려는 생각뿐인데, 오히려 형주를 돌려달란 말인가!"

바로 그때 공명이 울면서 땅에 엎드려 말한다.

오후가 형님의 가족들을 잡아가두었으니 형주를 돌려주지 않으면 형님 일가는 참살당할 것입니다.
형님이 죽고 어찌 저 혼자 살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주공께서는 저의 얼굴을 보아서라도 형주를 동오에 돌려주시고 저희 형제간의 정을 온전하게 해주소서!"

공명이 거듭 청했으나 현덕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침내 공명이 울면서 매달리니 현덕이 마지못해 대답한다.
"내 군사의 체면을 보아 형주의 절반을 떼어 장사,영릉,계양 세 지방을 내주겠소."

공명이 말한다.

"기왕 주공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즉시 관운장에게 편지를 보내
세 지방을 돌려주라 하십시오."

현덕이 제갈근에게 말한다.

"편지를 써드릴 테니 자유(제갈근의 자)께서 직접 형주에 가서 내 아우 운장에게 잘 말씀해보시오.
내 아우의 성미가 워낙 불같아서 나도 두려울 때가 있으니, 아무쪼록 잘 알아듣게 말씀하셔야 할 거요."


유현덕의 서신을 받아들고 물러나온 제갈근은 공명과 헤어져 즉시 형주로 떠났다.
관운장은 제갈근이 왔다는 보고에 중당(中堂)으로 청해들였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손님과 주인이 자리를 가려 앉자 제갈근이 먼저 유현덕의 편지를 내놓으며 말한다.

"황숙께서 이미 세 지방을 동오에 돌려주라고 허락하셨으니, 장군께서는 즉시 돌려주시오. 그래야만 내가 돌아가서 우리 주공께 면목이 서겠소이다."

제갈근의 말에 관운장의 안색이 변한다.

"나는 우리 형님과 도원에서 형제의 의를 맺으며 반드시 한나라 황실을 바로잡기로 맹세했소.
형주로 말할 것 같으면 애초에 한나라 강토라는 걸 천하가 다 아는데, 한치의 땅인들 어찌 함부로 내줄 수 있겠소?
장수가 외지에 나가 있을 때는 비록 임금의 명이라도 거역할 수 있다 했소.
아무리 형님의 서신을 가지고 왔다 해도 나는 단 한치의 땅도 동오에 내줄 수 없소이다!"

제갈근이 애원한다.

"오후가 지금 내 가족을 잡아가두었소이다.
만일 형주를 돌려받지 못하면 모조리 죽임을 당할 것이니.
바라건대 장군은 이를 가엾게 여겨주오!"

운장이 코웃음을 친다.
"그 모두가 오후의 계책인데, 내가 속아넘어갈 것 같소?"

"장군께서는 어찌 이리도 경우가 없으시오?"

그 말에 관운장은 손에 칼을 잡으며 말한다.

"더이상 말하지 말라. 이 칼에는 원래 경우가 없느니라!"

관평이 보다 못해 만류한다.

"군사의 체면을 봐서라도 아버님께서는 노여움을 거두십시오."운장이 제갈근에게 말한다.

"군사의 체면을 생각지 않았다면 그대를 동오에 살려보내지 않았을게요."

제갈근은 큰 수모를 당하고 나서 급히 배를 타고 공명을 만나러 다시 서천으로 갔다. 그러나 공명은 이미 각군을 순시하러 떠나고 없었다. 할 수 없이 제갈근은 현덕을 찾아가 뵙고, 관운장이 명에 따르기는커녕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울면서 고했다.

현덕이 시미를 떼고 말한다.
"내 아우는 성미가 워낙 급해서 한번 화를 내면 함부로 말을 붙이기가 어렵소.
자유는 잠시 동오로 돌아가 계시오.
내가 장로의 동천 한중땅을 얻게 되면 관운장을 그리로 보내 지키게 할 테니, 그때 형주를 돌려드리겠소이다."


관운장이 말한다.

"오림의 전투役, 적벽대전) 때 좌장군(현덕이 국가로부더 받은 작위)께서는 친히 비오듯 쏟아지는 돌과 화살을 무릅쓰고 힘을 합쳐 적을 격파하셨는데,
어찌 좁은 땅덩이 하나 차지할 수 없단 말이오?
그대는 동오의 신하로서 고마워해야 마땅한데도 그러기는커녕 그 땅마저 도로 내놓으란 게요?"

"그렇지 않소이다. 지난날 군후가 유황숙과 함께 장판에서 대패하고 오갈 데 없는 신세로 멀리 달아나야 했을 때 우리 주공께서의탁할 곳 없는 황숙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아낌없이 땅을 빌려주신 것은 훗날 공을 세울 기반을 마련해주고자 함이었소.
이제 황숙은 우리의 호의를 입어 서천을 얻고 형주까지 장악하고서 탐욕에 빠져 의리를 배반한 것이니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될까 걱정이오.
모름지기 군후께서는 깊이 살피시오."

"이 모두 형님께서 알아 하실 일, 내가 간섭할 바 아니오.""듣자하니 군후는 황숙과 도원에서 결의형제를 맺으면서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세했다니 황숙이 곧 군후이거늘.
어째서 이렇게 서로 핑계만 대신단 말이오?"

관운장이 미처 대답할 말이 없어 머뭇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뜰아래 서 있던 주창이 사납게 소리친다.
'천하의 땅은 인덕 있는 자가 다스려야 마땅하다. 어째서 너희 동오만 차지하겠단 말이냐!"

순간 관운장은 낯빛이 변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더니 주창이 들고 서 있던 큰칼을 빼앗아들고 뜰에 서서 주창을 똑바로 바라보며 꾸짖는다.

"이는 나라의 일인데 네 어찌 감히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당장 나가거라!"

주창은 관운장의 뜻을 눈치채고 먼저 강언덕으로 나가 붉은 깃발을 휘둘렀다.
기다렸다는 듯 강 건너편에서 관평의 패션들이 쏜살처럼 강을 건너왔다.
관운장은 한손에 큰칼을 들고 다른 한손으로는 노숙의 손을 끌어당기며 짐짓 취한 채 말한다.

"공이 오늘 나를 잔치에 청하셨으니 형주 일은 더이상 입에 올리지 마시오.
내 이미 취하여 오랜 정이 상할까 두렵소이다.
내 다음에 귀공을 형주로 초청해 잔치를 베풀 터이니 그때 다시 상의합시다."

노숙은 혼이 빠진 듯 관운장에게 끌려 강변으로 나섰다.
여몽과 감녕은 당장에라도 본부 군마를 풀고 싶지만, 운장이 한손에는 칼을 쥐고 또 한손에는 노숙을 잡고 놓지 않으니, 혹시라도 노숙이 다칠까 염려되어 감히 움직이지 못한다.
관운장은 나루터에 이르러 노숙의 손을 놓고, 뱃전에 올라서야 작별인사를 한다.
노숙은 바보처럼 서 있고 관공이 탄 배는 이미 바람을 타고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