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11, 방덕과 관우, 방덕은 관을 짜고 이기려했으나 관운장 물길 범람을 이용 승리
방덕은 관(冠)을 벗어놓더니 머리를 땅에 짓찧어 온 얼굴에 피를 흘리며 고한다.
"제가 한중에서 대왕께 투항한 이래 참으로 두터운 은혜를 입어 비록 간과 뇌를 땅바닥에 뿌릴지라도 갚을 길이 없다고 생각해온 터인데, 대왕께서는 어찌 이 방덕을 의심하십니까?
제가 고향에서 형님과 함께 살 때 형수가 워낙 어질지 못하여 어느날 술에 취한 김에 그만 죽여버렸습니다.
형님이 그 일로 저에 대한 한이 골수에 맺혀 다시는 만나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형제간의 정리는 이미 끊겼습니다.
또한 옛주인 마초로 말할 것 같으면, 용기만 있고 무모하여 싸움에 패하고 땅을 잃은 다음 홀로 서천으로 달아나 지금은 서로 섬기는 주인이 다르니 이미 옛 의리도 끊어졌습니다.
저는 대왕의 은혜와 베푸심에 감동해 죽기로 보답하고자 하니, 어찌 감히 다른 뜻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는 부디 살피시옵소서.“
"조조가 방덕을 부축해 일으키더니 위로하여 말한다.
"내 본래부터 그대의 충의를 알고 있었다. 앞서 한 말은 특히 여러 사람들을 안심시키려 한 것이니 그대는 더욱 노력하여 공을 세우라.
그대가 나를 저버리지 않는 한 나 또한 반드시 그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라."
방덕은 조조에게 감사의 절을 올리고 집으로 돌아와 그길로 목수를 시켜 관(棺)을 짜도록 했다.
이튿날 방덕이 여러 친구들을 초청해 자리를 마련했는데, 대청 위에 관을 내놓으니 모두 놀라서 묻는다.
'장군이 싸우러 나가는 마당에 이런 상서롭지 못한 물건을 무엇에 쓰려 하오?"
방덕이 술잔을 들며 친구들에게 말한다.
"나는 위왕의 두터운 은혜를 죽음으로써 갚고자 맹세했소.
이번에 번성에 가서 관우와 싸워 내가 그를 죽이지 못하면 반드시 내가 죽을 것이오.
그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더라도 그를 잡지 못한다면 내 마땅히 스스로 목숨을 끊을 터라 이 관을 준비했소.
이는 헛되이 돌아오지 않으려는 내 마음이외다."
여러 친구들이 듣고 모두 놀라며 탄식했다. 방덕은 아내 이씨(李氏)와 아들 방회)를 나오라고 하여 아내에게 말한다.
"내 이제 선봉이 되어 떠나면 마땅히 싸움터에서 죽어야 할 것이니.
내가 죽거든 그대는 이 아이를 잘 길러주오.
아이의 관상에 남다른 점이 있으니 자라면 반드시 아비의 원수를 갚아줄 것이오!"아내와 아들은 통곡하며 방덕과 작별했다.
방덕이 관을 가지고 출발하기에 앞서 부하장수들에게 말한다.
"이번에 관우와 죽기로 싸우다가 만일 내가 죽거든 너희들은 내시체를 이관에 수습하여라. 내가 관우를 죽이면 나 또한 그 수급을 베어 관 속에 넣어다가 위왕께 바칠 것이다."
부하장수 5백명이 모두 말한다.
"장군께서 이렇듯 충성스럽고 용감하신 터에 우리가 어찌 감히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때는 8월 가을철인데 며칠 동안 소나기가 쏟아졌다. 관운장은 사람을 시켜 배와 뗏목을 준비하도록 하는 한편 물에서 필요한 기구들을 수습하게 했다.
관평이 묻는다.
"육지에서 싸우는데 물에서 쓰는 기구는 무엇에 쓰시렵니까?
"관운장이 말한다.
"너는 모르는구나. 우금의 친군이 넓은 땅에 진을 치지 않고 즙고 험한 증구천에 모여 있지 않더냐.
요사이 가을비가 연이어 내렸으니 필시 양강의 물이 범람할 것이다.
내 이미 사람들을 보내 제방 곳곳의 물구멍을 막아두었으니 물이 넘칠 때를 기다려 우리가 높은 데로 올라 배를 타고 물을 한꺼번에 터버리면
번성과 중구의 군사들은 모두 물고기와 자라 밥이 될 것이니라."
관평은 그제야 깨닫고 절하며 감복했다.
한편 위군은 중구천에 주둔해 있는데 날마다 큰비가 그치지 않으니 독장성하(可)가 우금에게 찾아와 말한다.
"우리 대군이 증구천 어귀에 주둔해 있는데 지세가 낮은데다 비록 토산이 있긴 해도 영채와는 떨어져 있고 더구나 요즈음 비가 며칠째 내려 군사들의 고생과 어려움이 큽니다.
근래에 촉군이 높은 언덕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하고, 한수 어귀에 배와 뗏목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강물이라도 범람하는 날에는 아군이 위태로우니 한시바삐 계책을 세우소서."
우금은 오히려 꾸짖는다.
"네까짓 놈이 어찌 군심을 어지럽히려 드느냐. 두번 다시 그따위 소리를 했다가는 목을 벨 것이다!"
성하는 수모를 당하고 우금 앞에서 물러나왔다.
그길로 방덕을 찾아가 이 일을 고하니, 방덕이 말한다.
"그대의 생각이 무척 옳소만 우장군이 대군을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어쩔 도리가 없구려.
내일은 나 혼자서라도 군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겠소."
이렇게 두 사람은 상의하여 계책을 정했다.
그날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방덕이 장막 안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천군만마가 내닫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한다.
방덕이 크게 놀라 장막을 뛰쳐나온 즉시 말위에 올라 바라보니, 사면팔방에서 큰물이 밀려온다.
칠군은 어지러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일대 소란 속에 물살에 그대로 떠내려가는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평지에도 물은 한길이 넘었다.
우금과 방덕은 다른 장수들과 더불어 자그마한 산 위에 올라 겨우 물을 피했다.
마침내 날이 밝아왔다. 관운장과 여러 촉장들이 기를 흔들고 북을 치며 큰 배를 타고 함성을 지르며 몰려왔다.
우금이 사방을 둘러보아도 길은 없고 좌우에는 다만 군졸 50~60명뿐이었다. 이미 달아날 수 없음을 안 우금은 제 입으로 항복하겠다고 소리쳤다.
관운장은 군사들에게 명하여 우금과 그 군사들의 갑옷과 병기를 거두고 나서 결박지어 배에 태웠다.
방덕이 격노하여 말한다.
'내 차라리 칼에 맞아 죽을지언정 어찌 네게 항복하겠느냐!"
그러고는 큰소리로 욕설 퍼붓기를 그치지 않았다.
관운장이 크게 노하여 꾸짖으며 도부수들에게 명해 끌어내 목을 베게 했다.
방덕은 목을 늘여 도부수들의 칼을 받았다.
관운장은 방덕의 죽음을 가엾게 여겨 후하게 장사 지내주라고 명하고 다시 건선에 올라 대소 장졸들을 이끌고 아직 빠지지 않은
물길을 타고서 일제히 번성으로 쳐들어갔다.
한편 번성 주위에는 흰 물결이 도도히 밀려와 하늘에 닿을 듯했다. 물은 점점 더 불어나 성벽을 허물어뜨리고 성안까지 밀려들기세였다.
남녀노소가 모두 동원되어 흙을 나르고 돌을 옮겨 무너진 곳을 메웠지만 무서운 물의 기세를 미처 감당할 수가 없었다. 조조군의 여러 장수들은 낙담하여 황망히 조인에게 고한다.
'오늘의 이 위기는 도무지 사람의 힘으로 구할 길이 없으니 적이 오기 전에 배를 타고 밤새 달아나도록 하시지요.
비록 성은 빼앗기더라도 몸은 온전히 지킬 수 있겠습니다."
조인은 그 말을 좇아 바야흐로 배를 준비해 도망치려 했다.
그때 만총이 간한다.
"성을 버리면 안됩니다. 산골의 물이 밀려들어봤자 얼마나 오래 계속되겠습니까. 열흘도 못 가서 물은 자연히 빠질 것입니다.
관운장이 직접 성을 치지 않고 성 아래 겹하(下) 고을에 별장(8)을 파견하고 쉽게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우리 군사가 뒤를 습격할까 염려해서입니다.
지금 성을 버리면 황하 이남은 적의 손에 떨어질 터이니, 원컨대 장군께서는 번성을 굳게 지키소서."
조인이 두 손을 모으고 머리 숙여 감사한다.
'귀공의 가르침이 아니었다면 나라의 큰일을 그르칠 뻔했소이"다."
조인은 백마를 타고 성 위에 올라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맹세한다.
"나는 위왕의 명을 받아 이 성을 지킬 것이다.
누구든 성을 버리자고 하는 자가 있으면 목을 베겠다!"
여러 장수들이 한결같이 말한다. "저희들도 죽기로 성을 지키겠습니다."
조인은 크게 기뻐했다.
곧 성 위에 궁노수 5백명을 배치하고 군사들로 하여금 밤낮없이 철통같이 지키도록 했다.
그리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든 백성들을 동원해 흙과 돌을 날라 요새와 성벽을 수리하게 했다.
만총의 말대로 열흘이 못 되어 물은 차차 빠지기 시작했다.
한편 관운장이 우금을 비롯한 위나라 장수들을 사로잡으니 그 위엄이 천하에 드높아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