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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눈을 뜨기 힘들 정도 햇살이 눈부셨다.

딸 아이 손을 잡고 지하철 타고 터널속을 걷기도 하고
가을 길을 걷는다.

서울시 마포구 문화비축기지를 방문한다.
가을 억새는 부드럽게 하얗고 하늘은 깊게 파랗다.
아름답다.

살아있다. 눈동자가 움직이고 대답도 한다.
Ai 뇌속을 보니 고통이 떠오른다
인간의 뇌를 구현하는 AI에게도 진짜 감정이 있을까?
감정이 있다면 진짜 인간이겠네...
인간의 고통은 기체의 이동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정한 양의 기체를 빈 방에 들여보내면 그 방이 아무리 큰 방이라도
기체가 아주 고르게 방 전체를 완전히 채울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고통도 그 고통이 크든 작든 상관없이
인간의 영혼과 의식을 완전하게 채운다.
따라서 고통의 '크기'는 완전히 상대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은 고통이여도 나에게는 큰 고통드로 다가오는 것처럼
AI도 고통을 느낀다면
인간의 고통을 다 담아가면 좋겠다.

이 작품을 보고 전쟁을 치룬 장군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고 느꼈다.
누구는 이기고 누구는 지고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이런 생각이 너무 비현실적이고 실제 삶과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바란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그렇게 지고한 도덕적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수감자 중에서 아주 적은 사람만이 충만한 내면의 자유를 지키고
시련을 견딤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얻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예만으로도 인간이 지닌 내면의 힘이 외형적인 운명을 초월해
그 자신의 존재를 높인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비단 강제 수용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처에서 인간은 운명과 시련을 통해 무엇인가를 성취할 수 있는 기회와 만난다.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당시 가장 절망적이었던 것은
얼마나 오랫동안 수용소 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언제 석방되는지를 몰랐다.
실제로 수형 기간은 불확실했으며 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일시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불확실성은 결말이 났지만,
이번에는 결말에 대한 불확실성이 뒤를 잇는다.
이런 형태의 삶이 끝날 것인지 말 것인지,
끝난다면 과연 언제 끝날 것인지 미리 예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finis'라는 라틴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끝 혹은 완성을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의미한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사람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세울 수가 없다.
따라서 내적인 삶의 구조 전체가 변하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퇴행현상을 볼 수 있다.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자신의 '일시적인 삶'을 비현실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삶의 의지를 잃게 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그 앞에 닥치는 모든 일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여겨진다.
몇몇 사람들은 세상일에서의 실패와 죽음을 통해서도
이런 위대함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들은 평범한 환경에서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 낸다.
<비스마르크>
인생이란 치과 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윤리학>
감정, 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니체>
왜 살아야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과제들, 즉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에 따라 다르다.
삶이 우리에게 던져 준 과제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바로 이것이 개개인마다 다른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될 수 있는대로 나약해지지 않고,
남몰래 눈물 흘리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고통과 대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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