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선주는 친히 전군을 거느리고 모든 나루와 요충지를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한당이 육손에게 사람을 보내 추이 몰려온다고 보고하자 육손은 혹시 한당이 경솔하게 행동할까 걱정되어 급히 달려왔다.
한당은 산 위에 올라 멀리 촉군이 산과들을 덮으며 파도처럼 밀려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촉군 진영에 누런 비단일산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한당이 육손을 맞아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는 손가락으로 비단 일산을 가리키며 말한다.
"저 군중에 유비가 있는 게 틀림없소 내가 나가서 무찌르고 싶소이다."
육손이 고개를 젓는다.
"유비는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내려오면서 십여번의 싸움에서 연달아 이겨서 그 얘기가 왕성할 것이오.
우리는 험한 지세를 이용해 굳게 지켜야지 함부로 나가 싸워서는 안되오.
나가면 불리하오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으며 굳게 방비하고 적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기다려야 하오.
지금 촉군이 평원과 광야를 거침없이 달리 며 기세가 등등하지만, 우리가 나가서 맞붙지 않고 굳게 지키면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어 아마 산속으로 군사를 옮길 것이오.
그때 계책을 써서 적을 무찔러야하오"
한당은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육손의 말에 복종하지 않았다.
선주는 전대 군사들에게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싸움을 걸게 했다.
육손은 모든 군사들에게 귀를 틀어막게 하고 나가 싸우는 것을 일절 허락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친히 말을 달려 요충지를 두루 돌아다니며 군사들을 진정시키고 위무하기에 바빴다.
선주는 동오의 군사가 싸움에 응하지 않자 차츰 초조해졌다.
마량이 아뢴다.
"육손에게 깊은 계략이 있을 것입니다.
폐하께서 이번 원정을 시작해 봄을 보내고 여름이 닥쳤습니다.
저들이 지키기만 하고 나오지 않는 것은 우리에게 무슨 변동이 있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두루 살피소서."
선주가 말한다.
"저들에게 무슨 계책이 있겠소?
그저 겁이 나서 나오지 못하는 게지.
싸울 때마다 패했으니 어찌 쉽게 나와 싸우겠는가?"이때 선봉장 풍습이 아린다.
"날씨가 찌는 듯 무더워 군사들이 불 속에 들어 있는 듯한데다 물이 있는 곳마저 멀어서 매우 불편합니다."
선주는 마침내 각 진영에 명하여 숲이 울창하고 물이 가까운 곳으로 영채를 옮기게 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그때 다시 진군하려는 것이다.
풍습은 선주의 명에 따라 모든 영채를 나무가 우거진 숲속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이때 마량이 다시 아뢴다. "우리 군사들이 이렇게 이동 중일 때 갑자기 오군이 쳐들어오면 어찌합니까?"
선주가 말한다.
"오반에게 우선 노약한 군사 1만여명을 거느리고 동오 영채 근방의 평지에 주둔해 있게 했고,
짐은 정예병 8천명을 거느리고 산골짜기에 매복해 있을 것이오.
육손이 만일 우리가 영채 옮기는 걸 알고 습격해온다면 오반은 거짓 패한 체하고 달아날 것이고, 육손이 그 뒤를 쫓아오면 짐이 매복해 있던 군사들을 이끌고 그들의 김을 끊어버릴 터이니, 능히 그 젖비린내 나는 놈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오."
듣고 있던 문무관원들이 모두 감탄한다.
“폐하의 신기묘산은 도저히 저희들이 미치지 못하겠습니다."
마량이 다시 아린다.
"최근 들으니, 제갈상은 동천에서 모든 요충지를 시찰하며 위군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하고 있다 하옵니다.
“폐하께서는 각 영채를 옮긴 지형을 도면으로 그려 승상께 보내 의견을 물어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집도 병법을 알고 있는데 굳이 숭상에게 물어볼게 있겠느냐?"
"예로부터 '여러 말을 들으면 밝고 한쪽 말만 들으면 어둡다했으니 청컨대 폐하께서는 숙고하소서."
"경의 뜻이 정 그렇다면 곧 각 영채로 가서 사지팔도도본(니산천과 도로 등을 자세히 그린 지도)을 그려가지고 동천으로 가서 승상의 의견을 들어오라.
잘못된 점이 있다 하면 급히 돌아와 고하도록 하라."
마량은 선주의 영에 따라 도본을 그려 동천으로 떠났다.
선주는 숲이 울창한 곳으로 군사 옮겨 더위를 피하게 했다.
이러한 촉군의 움직임은 즉시 정탐꾼에 의해 한당과 주태의 귀에 들어갔다.
두 사람은 이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며 육손에게 갔다.
"지금 촉군의 40여개 영채가 산속으로 들어가 냇물 가까운 곳에서 목을 축이며 쉬고 있다 하오.
그러니 도독께서는 때를 놓치지 말고 즉시 적을 섬멸하도록 하시오.
육손은 7백리에 잇닿은 영채를 불사르고 공명은 팔진도를 교묘하게 펼쳐놓다
한당과 주태는 선주의 군사들이 시원한 숲속으로 영채를 옮겼다는 보고를 받고 즉시 육손에게 달려가 알렸다.
육손은 몹시 기뻐하며 친히 군사를 이끌고 동정을 살피러 나갔다.
과연 평지에 주둔해있는 촉군은 1만여명에 불과했는데, 그나마 대부분 늙고 약한 병사들뿐이었다.
"저 앞산 골짜기에 살과 피어오르는 걸로 보아 복병이 있는 게 틀림없소. 평지에 노약한 병사들을 두고 우리를 유인해보려는 속셈이 분명하니.
장군들은 절대 싸우러 나가서는 안되오."
모든 장수들은 육손의 말을 듣고는 나약한 선비는 어쩔 수 없다고 은근히 비웃었다.
이튿날 오반은 군사를 이끌고 관 앞으로 와서 싸움을 걸었다.
오반의 군사들은 무력을 뽐내며 갖은 욕설을 퍼붓더니, 나중엔 갑옷을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앉아 있거나 아예 드러누워 잠을 자기까지했다.
서성과 정봉은 자기들을 깔보는 듯한 촉군의 행태에 잔뜩화가 나서 장중으로 들어와 육손에게 말한다.
"촉군이 우리를 이만저만 업신여기는 게 아니오.
우리가 당장 나가서 혼쭐을 내주겠소이다."
육손이 웃으며 답한다.
"그대들은 단지 혈기만 믿을 뿐 손오(吳, 손자와 오기. 고대의 유명한 전략가)의 교묘한 병법에 대해서는 모르시는 모양이구려.
지금 적들은 유적지계(誘적을 유인하는 계책)를 써서 우리를 자극하려는 것이니, 사흘만 참고 기다려보시오. 그때쯤엔 반드시 그 속내를 드러내게 될 것이오."
서성이 묻는다.
"사흘 뒤에는 적들이 영채를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버릴 텐데 어떻게 저들을 친단 말이오?"
육손이 가볍게 답한다.
"나는 저들이 영채를 다 옮기기를 기다리고 있소."
장수들이 묻는다
"처음에 촉의 얘기를 꺾었어야 하지 않겠소?
이제 적들이 영채를 5~6백리에 걸쳐 늘어세운 마당에 이대로 7~8개월이 지나 각요충지를 견고히 방비하게 되면 무슨 수로 무찌른단 말이오?"
"그건 공들이 병법을 몰라서 하는 소리요.
유비는 당대의 영웅호걸이니 지혜와 피가 많소.
그 군사들이 처음 모였을 때는 법도가 분명하여 빈틈이 없었으나,
이제 오래 싸우고 지키느라 지친데다가 우리가 응하지 않아 기강이 해이해졌으니, 바로 지금부터가 적을 무찌를 기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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