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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삼국지 17. 공명의 정치는 태평성대를 누리고, 지도자로서 힘든 볼모의 땅 원정을 몸소 떠난다.

by 센스쟁이야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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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상이 성도에 있으면서 크고 작은 일을 가리지 않고 몸소 결재하니, 동천과 서천 백성들은 모두 태평성대를 누렸다.
밤에도 문단속이 필요 없고, 길에 버려진 물건도 제것이 아니면 줍는 이가 없었다.
더군다나 다행스럽게도 해마다 대풍이 드니, 늙은이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배를 두드리며 노래하고 장정들은 혹시 부역이라도 있으면 앞다투어 해치웠다.
그러니 군수품과 무기 등 모든 장비들이 완비되었고,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 쌓였으며, 부고)에 재물이 넘쳐났다.

건홍 3년(225) 익주에서 급보가 날아들었다.
"만왕 맹획이 10만 대군을 일으켜 경계를 침범해왔습니다. 한조(漢) 10방후 옹치의 후손 건녕 태수 옹개는 맹획과 결탁해 반역하였습니다.
또 장가 태수 주포와 원준 태수 고정 두 사람도 역도에게 성을 바쳤습니다.
오로지 영창(昌) 태수 왕항만 항복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옹개·주포·고정 세 사람 수하의 군사들이 맹획의 길잡이가 되어 지금 영창군을 공격하고 있고, 이에 맞서 왕항이 공조(功)여개(呂)와 함께 백성을 모아 영창성을 사수하고 있는데, 형세가 매우 다급하다 합니다."

공명은 즉시 조정으로 들어가 후주에게 아뢴다.
'신이 보기에 남만이 불복하여 경계를 범한 것은 국가의 큰 걱정거리입니다.
이제 신이 몸소 대군을 이끌고 가서 그들을 토벌하고자합니다."

후주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묻는다.
"동쪽에서는 손권이. 북쪽에서는 조비가 기회만 엿보고 있는데, 상보께서 짐을 두고 나가 계시는 동안 만일 오와 위가 쳐들어오면 어찌한단 말이오?"

"동오는 우리와 강화를 맺은 지 얼마 안되니 다른 뜻을 품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다른 뜻이 있다 해도 이엄이 백제성에 있으니 능히 육손을 당해낼 것입니다.
그리고 조비는 이번 싸움에서 대패하여 예기가 꺾인지라 멀리 떨어진 이곳을 도모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마초가 한중의 중요한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근심할 일이 아닙니다.
또한 신이 관흥과 장포에게 군사를 나누어주고 상황에 따라 대처하도록 지시해두었으니 폐하를 보호해 모시는 데 조금도 실수가 없을 것입니다.
신은 이번 기회에 만방(蠻, 남쪽 오랑캐)을 토벌하고 이어 북벌(北伐)하여 중원을 쳐서,
지난날 선제께서 초려에 있는 신을 세번씩이나 찾아주신 은혜와 폐하를 신에게 부탁하신 중임에 보답코자 합니다."

후주가 말한다.
"짐이 아직 나이 어려 세상일에 무지하니 상보께서 모든 일을 잘 처리해주시오."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반열에서 한 사람이 나서며 소리친다. "그건 절대 안됩니다!"
모두가 보니, 그는 바로 남양(南陽) 사람 왕련(王)으로 자는 문의였으며, 그때 간의대부 일을 맡고 있었다. 왕련은 계속 간한다.

"남방은 불모의 땅으로 무서운 풍토병이 들끓는 곳입니다.
중임을 맡으신 승상께서 몸소 원정을 떠나신다니 이는 적절한 판단이 아닙니다.
더구나 옹개 등은 그저 하찮은 외환(外)에 지나지 않으니, 승상께서 친히 가실 것 없이 대장 한 사람을 보내 토벌하게 해도 능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왕련의 말에 공명이 답한다.
"남만지방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임금의 덕화(化)를 입지 않은 자가 많아서 복종시키기가 몹시 어렵소.
내가 직접 가서 때로는 강하게 다루고 혹은 부드럽게 달래며 형편을 보아야 하니,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일이 아니오."

왕련은 거듭거듭 간하며 공명을 말렸으나 공명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마침내 공명은 후주께 하직인사를 올렸다.
장완을 참군으로 삼고, 비의를 장사(史)로 삼았으며, 동궐과 번건을 연사(史)로 삼고,
조자룡과 위연을 대장으로 삼아 군마를 총 지휘하게 했으며, 왕평·장익을 부장으로 삼고 아울러 서천장수 수십명과 군사 50만명을 일으켜 익주를 향해 떠났다.

공명과 50만 대군은 대오를 지어 행군했다.
배가 고프면 먹고, 목이 마르면 마시고, 밤이 되면 머물고, 새벽에는 길떠나기를 반복하면서,
어느곳을 지나든지 백성들에게 폐 끼치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