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가 말한다.
“조조가 백만 대군을 거느리고 황제의 이름을 빌려 천하를 정벌하고 있으니, 이를 거역하는 것은 불경이 됩니다
조조를 막아내시려면 반드시 장강을 이용해야 하는데, 조조가 이미 형주를 차지해 장강의 험준한 지세를 얻었으니 대적하기 어려운 형국입니다.
속히 항복하시는 게 가장 안전한 방책이라 사료됩니다.
노숙이 대답한다.
“ 사람들이 하는 말은 모두 장군을 그르치는 것들뿐입니다.
그들이 모두 조조에게 항복한다 하더라도, 주공께서는 절대로 조조에게 항복하셔서는 안됩니다”
장군께서 항복하겠다면 대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지위라면 고작 후에 봉해질 것이고, 수레 한대에 말 한필, 종자 두어 사람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무슨 수로 남면하시어 천하를 내려다 보시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 한몸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결코 들으실 게 못됩니다.
장군께서는 어서 바삐 큰 계책을 정하도록 하십시오“
듣고 나서 손권은 한숨을 내쉬며 말한다.
공명은 속으로 생각한다
‘장소는 손권 수하의 제일가는 모사이니, 저자를 꺾지 못하고 어찌 손권을 설복하겠는가’
이윽고 공명은 조용히 대답한다.
“나로서는 형주 일대를 취하기란 손바닥 뒤집듯 쉬운일이나,
다만 우리 주공께서 몸으로 인의를 행하시느라 차마 같은 가문의 터전을 빼앗을 수 없어 사양하신 것이오.
한데 어린 조카 유종이 간사한 말에 넘어가 은밀히 항복하여 조조로 하여금 날뛰게 만들었소이다.”
장소가 말한다.
“그렇다면 선생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게 아니오?”
공명은 껄껄 소리 내어 웃고는 말한다
“붕새가 만리를 나는데 뭇새가 그 뜻을 어찌 알겠소?
내 비유해서 말할 테니 잘 들어보시오
사람이 중병에 들면 먼저 미음과 죽을 먹이고 약한 약을 써서, 장부가 조화롭게 되고 몸이 차차 편안해질 때를 기다렸다가,
그 뒤에 육식으로 보하고 독한 약을 다스려 병의 뿌리를 제거해야 목숨을 온전히 구할 수 있는 법이오.
그러나 만약 맥이 고르기를 기다리지 않고 갑자기 독한 약과 고기를 먹인다면 이는 참으로 구하기 어려워지는 것이외다.
우리 주공 유예주게서 지난날 여남에서 패하여 유표에게 몸을 의탁해 계실때
군사는 1천여명에 불과했고 장수라고 해봐야 관우,장비,조자룡에 지나지 않았으니 이는 바로 병세가 극도로 위중한 경우.
당양에서 패한 일도 굳이 말씀드리자면, 수십만명이나 되는 백성들이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아이를 이끌고 다라나서자 예주께서 차마 그들을 버리지 못하여
하루에 겨우 10리를 가면서 손에 넣을 수 있는 강릉마저 단념하고 온갖 고초를 백성들과 함께 겪으셨으니
이 또한 참으로 어질고 의로운 일이었소이다.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대적할 수 없으며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의 다반사라.
옛날 고조께서 여러차례 항우에게 패했으나 해하싸움 한번으로 공을 이루셨으니, 이것이 바로 한신의 좋은 계교가 있었기 때문이외다.
그 한신도 고조를 섬긴 지 오래지만 매번 이긴 것은 아니니
국가의 대계와 사직의 안위는 바로 계책을 잘 세우는 데 달려 있는 것이지
말만 앞세우는 무리들이 명성이나 얻으려고 사람을 속이는 것과는 다르오
그런 자들은 앉으나 서나 말로는 못하는게 없지만 임기응변으로 백에 하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외다.
엄준이 소리 높여 한마디 한다
”공이 큰소리는 치지만 제대로 된 학문이 없으니 선비들의 웃음거리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오“
공명이 대답한다
“선비중에도 군자와 소인이 있으니, 군자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며 바른 것을 지키고 간사한 것을 싫어하니
그 덕이 당대에 미치고 그 이름은 후세에 길이 남는 법이오
소인은 그저 책벌레처럼 글줄이나 파고 문장을 다듬는 데만 교묘하여 젊은 시절에는 부나 짓고 늙어서는 경서을 연구하며,
붓을 들면 비록 천 마디를 써내지만 가슴속에는 한가지 계책도 없는 법이오.
소인의 선비라는 것이 하루에 만 수의 시를 지어낸들 취할 것이 없으니 무슨 소용있겠소?
노숙 “ 그러니 장군은 부디 마음을 돌리시오. 조조를 이길 수 없고”
주유와 노숙이 말씨름 하는 동안, 공명은 손을 소매 속에 넣고 빙그레 웃으며 말없이 앉아 있다.
주유가 묻는다
“선생은 어째서 웃고만 계시는지요?”
공명이 답한다.
“자경이 시무를 모르고 고집 세우는 게 우스워서 그렇소”
노숙이 묻는다
“선생은 어째서 나더러 시무를 모른다 하시오?”
공명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말한다
“공근이 조조에게 항복하자고 뜻을 정한 것은 이치에 합당하다고 생각하오”
노숙이 시비라도 걸듯 “아니 공명, 대체 무슨 말씀이오?
그대는 우리 주공더러 무릎을 꿇고 국적에게 항복을 하라는 말인가!“
공명은 들은 체도 않고 계속 주유에게 말한다
”내게 한가지 계책이 있고
수고스럽게 양을 끌고 술통을 메고 갈 필요가 없고
땅과 인을 바칠 것도 없고
일엽편주에 사람 둘만 태워 조조에게 보내면 다 되는 노릇이오“
주유가 묻는다
”어떤 두 사람을 보내야 조조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겁니까?
공명이 대답한다
“조조가 말하기를 내게 두 가지 소원이 있으니
하나는 사해를 평정애 제업을 이루는 것이요
또 하나는 강동 이교를 얻어 동작대에 두고 만년을 즐기는 것이라.
대교와 소교를 얻기 위함이라.”
주유의 노여움음 가라앉지 않는다
“선생이 몰라서 하시는 말씀이오
대교는 곧 손책의 부인이고
소교는 바로 내 아내요”
공명은 아무것도 모르다가 그제야 알았다는 듯이 짐짓 황공한 낯빛을 지어 보인다
“내가 그런 줄도 모르고 함부로 망령된 말을 했으니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주유가 분연히 말한다
“설혹 도끼가 내 머리 위에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뜻을 바꾸지 않을 것이니
바라건대 공명은 내게 한 팔을 빌려주어 함께 역적 조조를 물리치도록 합시다”
공명이 대답한다
“도둑께서 명하시는 일이라면 견마의 수고를 다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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