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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보는 세상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서고는 그때그때의 생각이 담긴 결과이다.

by 센스쟁이야 202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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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주저 중 하나로 철학적 탐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철학이란,
"파리잡이통에 갇힌 파리에게 어떻게 하면 밖으로 나올 수 있는지 가르치는 것이다"라고 설명을 해줍니다.

예컨대 이런 상상을 해봅시다.
파리가 좋아하는 먹이가 있고 그것을 덮고 있는 커다란 유리병이 있습니다.
먹이 냄새에 이끌려 먹이가 있는 쪽으로 날아온 파리가 교묘한 구조에 유도되어 병 안으로 진입하게 되고
그후에는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됩니다.

파리는 일반적으로 위를 향해 납니다.
혹은 밝은 외부를 향해 날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덫에 걸려 파리는 외부로 나갈 수 없습니다.
결국 파리는 물이 괴어 있는 출구 근처에 떨어져 죽고 맙니다.
사실 내부 공간과 외부 공간은 완전히 막혀 있지 않기 때문에, 나가는 방법만 안다면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포인트는 먹이 냄새가 짙게 풍기는 곳으로 가지 않는 겁니다.
그리고 본능을 거슬러 위쪽이나 더 밝은 쪽으로 가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본능에 반하는 방향으로 날아 미로와도 같은 공간을 통과해 유리병 밑 가장자리를 돌아 빠져나가면,
파리는 비로소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파리는 전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채 본능에 따라 날기만 하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덫에 걸려버립니다.
거기서 빠져나온다는 게 무슨 수를 써도 불가능한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요컨대 비트겐슈타인은 애당초 물음을 제기하는 방식이 틀렸다는 겁니다.
그래 놓고는 그것을 중요한 철학적 문제라 오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다보니 점점 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 계속 미망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의 철학자들이 처한 상황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철학자들이 빠져 있는 그 미망으로부터 빠져나가는 길을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입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논리철학 논고> 비트켄슈타인


고등학생 시절에 산 책이 지금도 여러 권 있고, 대학대학 시절에 산 책은 수백 권.
아니 얼추 1000권은 아직도 보유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책의 책등을 보기만 해도 내가 그 책을 사서 읽었던 시기의 추억이 잇따라 되살아난다.
그 무렵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에 고뇌했으며 또 무엇을 기뻐했던가.
책과 함께 그런 추억들이 되살아온다.
나의 분노와 고뇌가 책과 함께 있었음을 떠올린다.

책과 함께 있었음을 떠올린다.
어쩔 수 없이 더러워진, 여기저기 얼룩이 진 책일수록 버리기 힘든 것은 그 책을 되풀이해서 읽고,
줄을 긋거나 메모를 했던 추억이 거기에 가득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진만으로는 다 알 수 없을 테지만, 어쨌든 그러한 책들이 서가 여기저기에 꽂혀 있다.

서가라는 것은 재미있는 물건이다.
하나하나의 블록이 특정한 생각하에 형성되어 있다는 게 잘 드러난다.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블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때그때의 생각에 이끌려서 일군의 서적을 모은 결과가 각각의 블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장석주의 <글쓰기는 스타일이다>에 추천도서로 알게 되었다.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을 읽고 그의 지성에 매료되었다.
이 책은 647페이지 벽돌책이다.
중간에 고양이 빌딩 사진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책의 경계가 끝없이 뻗어나간다.
신학에서 물리학, 철학의 삼위일체론
양자역학, 빛과 에너지, 형이상학, 역사, 종교, 지리학, 미술학, 자연학.
작가는 머릿말에서 이 책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간신히 여기서 끝낸다고 마지막을 썼다.

서고가 살아있다고 했다.
작가의 고뇌에 따라 책들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겨진다.
한 인간의 희노애락을 닮고 있을 20만권의 서고가 평생 함께 했다는 거
지금도 살아서 움직인다는 거

그는 책을 통해서 인생의 경계도 뻗어나갔다.
취재와 자료 조사를 위해 여행도 다녔다.
이 책을 읽고 사고의 경계와 인간의 한계가 무엇인지

왜 나는 경계를 짓고 우물안 개구리로 살았는지 고심해본다.